피겨스케이팅(이하 피겨) 지도자 신혜숙 씨(46세)가 얼음판 위해 첫발을 내딛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었다. 그로부터 36년이란 긴 세월동안 피겨 인의 한 길을 걷고 있는 그녀의 인생은 피겨스케이팅을 빼놓고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처음엔 취미 삼아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피겨에 재미를 붙이고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려 하자 처음엔 부모님이 엄청 반대를 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 것에 그렇게 후한 점수를 주는 사회 분위기가 되질 못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단 말처럼 저도 이내 부모님을 설득하고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피겨를 사랑한 열 여섯 소녀가 선택한 일본 유학길   신혜숙 씨는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남다른 결심을 했다. 이왕 시작한 피겨를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피겨를 할 수 있는 여건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링크라고 해야 동대문 실내 빙상장 하나가 전부였고, 이 마저도 피겨 선수들이 마음놓고 연습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국내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지도자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었다. 이에 열 여섯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혜숙 씨가 내린 인생의 결정은 유학이었다 “중3때 일본 유학 길에 올랐습니다. 선진기술도 익히고 좋은 여건 속에서 피겨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죠. 그곳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일본의 피겨 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훌륭한 시설과 운동 여건이 조성된 일본에 내심 무척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신혜숙 씨는 79년, 80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등 활발한 선수생활을 펼치다 80년 동계 올림픽 출전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1981년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처음엔 심판 활동을 잠깐 했었습니다. 그러다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은 셈인데... 국가 대표 상비군 팀을 가르쳐도 보고, 개인 강습을 해보기도 하면서 느낀 것은 피겨 지도자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외국의 선진 기술의 흐름과 경향을 놓치지 않고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죠.” 빙판 위에선 선수들과 함께 땀방울을 흘리고, 연습을 끝난 후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다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길 18년 째. 현재 그녀는 서울시 빙상연맹 경기 이사로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그녀가 애쓰고 노력한 만큼 그녀가 지도하는 선수들의 실력은 뛰어날 수밖에 없다. 작년 12월에 있었던 피겨 전국 남녀 종합선수권 대회에서 현재 신혜숙 씨가 지도하고 있는 남·녀 선수들이 각 종목에서 메달을 휩쓸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것이다. “가르치는 선수들이 시합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될 때만큼 지도자로서 보람된 순간도 없을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이 무척 대견스럽기도 하지요” 피겨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많이 따오는 효자 종목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운동 환경이 좋질 못하다. 피겨 전용 링크는 고사하고 기존의 몇 안 되는 링크에서도 늘 쇼트트랙이나 아이스 하키 연습 시간에 눈치를 봐야한다. 고작 잡은 연습시간 이래야 타 종목의 연습이 끝나거나 일반 개장 시간이 지난 늦은 밤 시간이기 일 수이며 때문에 좋은 빙질 상태는 바라는 것은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엄마의 마음으로 가르친다   “연습 시간이 고정적이질 않아 피겨 선수나 지도자들이 많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피겨 전용링크가 생겼으면 좋겠고, 또한 이에 앞서 관계 기관이 국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피겨 저변 확대에 많은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피겨는 음악연기와 운동이 결합된 종합예술이다. 그만큼 지도자의 세심한 가르침이 필요한 스포츠 종목이기도 하다. “엄마가 자식을 가르칠 때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신혜숙 씨는 아이들을 맹목적인 사랑으로만 가르치진 않는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는 상벌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잘못 한 일에 대해서 따끔히 혼을 내고, 잘한 일에 대해선 더 없는 칭찬과 격려를 해줍니다. 혼자 이겨내고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많은 운동이라 선수들을 늘 따뜻하게 다독거려 주려고 애써봅니다.” “올 2월에 전국동계체전에서 제가 가르치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물론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세계 대회에서 비단 제가 가르치는 선수가 아니더라도 하루 빨리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길 소망한다”고 말하는 피겨지도자 신혜숙 씨. 한국 피겨가 세계속에 우뚝서게 될 기쁨의 순간이 올 때까지 피겨 지도자의 길을 멈출 수 없다는 그녀는 당당히 말한다. “아무리 열악한 조건에 있어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